영상 편집
기획된 내용이나 스토리보드를 중심으로 촬영을 마치고 파일을 내용에 맞게 배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래픽 소스나 오디오를 첨부하여 영상 제작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영상 편집입니다.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기 위해서는 영상 포맷과 코덱의 특성을 고려하여 편집 시스템을 선택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편집시스템은 소니(Sony)사의 베가스(Vegas), 어도비(Adobe) 사의 프리미어(Premiere), 애플(Apple)사의 파이널 컷 프로(Final Cut Pro)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외에도 상용 또는 무료로 제공되는 다양한 편집 소프트웨어들이 있어 제작하는 영상의 목적과 용도에 따라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DSLR 카메라로 비디오 촬영 시 영상이 파일로 기록된 기 때문에 테이프로 녹화한 것을 파일로 저장하는 예전의 캡쳐 방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비선형(non-linear) 편집이라고 하는데 촬영한 영상과 음성 파일을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복사하여 필요한 파일을 자유롭게 선택, 편집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최근에는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지고 저장 용량도 매우 커짐에 따라 별도의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 성능만으로 불편함 없이 영상 편집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편집이 완성된 영상을 최종 결과물로 출력하는 과정은 크게 마스터링(mastering)과 인코딩(encoding)으로 구분됩니다. 테이프에 출력하기 위한 테이프 마스터링과 파일 마스터링, 그리고 인터넷과 모바일 매체에 적합한 다양한 마스터링들이 있습니다. 또한 영상의 품질을 최대한 살리면서 적은 용량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인코딩이라고 합니다. 인코딩 포맷은 크게 디스크 배포용과 스트리밍용으로 나뉘는데 처리 작업의 속도와 품질을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코덱과 시스템들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진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특별한 장소와 시간에 사진을 찍었지만, 이제는 거리에서든 버스에서든 혹은 집에서든 일상 곳곳에서, 순간순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은 우리의 생활 깊숙이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의 발명과 확산
사진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세기입니다. 여러 발명가가 사진의 완성에 힘썼고, 19세기에 이르러 상으로 맺힌 이미지를 고정(정착)하는 기술이 완성됨으로써 발명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대개 사진의 탄생일이 1839년 8월 19일이라고 말하는데, 이날은 프랑스의 학사원에서 다게르가 사진 촬영과 현상을 시연한 이후 공식적인 특허 발표가 있었던 날입니다. 그러나 실제 사진의 발명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진가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완성된 것입니다. 사진의 역사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연구를 하고 이미지 고정에 성공했던 세 사람을 발명의 선구자로 일컫습니다. 니세포르 니엡스(Niepce, Joseph Nic'ephore)는 시간적으로 보았을 때 최초의 발명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니엡스는 유태역청과 라벤더 오일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빛을 받은 유태역청을 라벤더 오일로 지우면 빛을 받은 부분은 굳어서 그대로 남고, 빛을 받지 않은 부분은 오일에 녹는 현상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기법을 태양의 그림이라는 뜻의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라 불렀고, 1826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진인 〈르 그라의 창 가에서 본 조망>을 촬영하였습니다. 1829년 다게르가 찾아와 개발 협약을 맺고 사진의 질적 개선에 힘쓰던 중 1833년 사망하였습니다.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Daguerre, Louis Jacqu es Mand)는 디오라마 무대의 배경을 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게르는 보다 더 사실적인 배경을 그리기 위해 사진 연구에 착수하였습니다. 니엡스의 연구성과에 대해 들은 다게르는 그를 찾아가 공동연구를 진행하였고, 니엡스가 죽은 후에는 그의 아들과 협약관계를 지속하여 마침내 발명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빛을 받은 은에 수은가스를 쬐면 은이 검은 아말감으로 변질되면서 상이 생기는 현상을 이용하여 사진을 완성하였습니다. 동판을 연마하고 그 위에 은을 도금하여 만드는 그의 사진은 거울에 비친 이미지라고 할 만큼 선명하였고, 산업사회라는 당시의 시대적 감수성에 잘 맞았습니다. 또 단 한 장만 만들 수 있는 이미지라는 점이 한 장의 걸작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 주었습니다. 결국 그는 1839년 8월 19일 프랑스 정부로부터 특허를 받고 연금을 획득하였습니다. 다게르의 사진이 발명특허를 받는 데에는 프랑수아 아라고라는 정치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아라고는 학사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사진 이 프랑스의 창조적 발명품이고, 복제예술로서 고고학과 예술에 기여할 것이며,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과학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특허를 주어야 할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진을 민주적 도구이자 산 업의 꽃으로 본 것입니다. 특허를 받게 되자 그는 연금을 받고 사용권을 개방하는 대신, 그의 사진술을 다게레오타입 (Daguerreotype)이라 명명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로써 그의 이름이 최초의 발명가로서 사진의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사진의 대표적인 발명가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Talbot, William Henry Fox)는 같은 시기에 발명을 시도했지만 완성에 한 발 늦은 영국의 탈보트는 프랑스에서 발명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부랴부랴 연구를 재개합니다. 그는 1841년 칼로타입( Calotype)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특허 출원을 내고, 1844년 24장의 사진이 담긴 책 『자연의 연필』을 출간하였습니다. 탈보타입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사진기법은 종이에 빛에 반응하는 물질인 은을 발라 인화하였기 때문에 상이 부드럽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또 반투명한 종이 필름을 다시 종이에 밀착 인화하여 여러 장의 사진을 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량 복제라는 현대 필름 카메라의 진정한 발명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 세 사람 외에도 최초의 자화상으로 남게 된 이폴리트 바야르도 비슷한 시기에 발명에 성공하였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포토그래피(Photography)'라는 용어는 싸이오황산염을 이용한 정착 기술을 발명한 존 허셀 경이 명명한 것으로, 빛을 뜻하는 photon과 그림을 뜻하는 graphy가 합쳐진 말입니다. 즉,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사진의 원리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의 '사진( 寫眞)'이라는 용어는 진짜와 같이 베낀다는 뜻으로, 사진의 원리가 아니라 진짜처럼 찍힌 결과만을 지칭합니다. 이는 외국으로부터 완제품이 수입된 우리의 역사적 현실을 반영합니다.